2019. 03.15
<장미 속 쓰레기>
원래 인간의 속내라는 것이 이런 것일 거다.
꽃 색과 보색(補色. complementary color)인
초록의 잎이 도와 꽃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고,
꽃은 그 덕에 한껏 뽐내며 꿀을 찾던 벌을 유혹한다.
그 꽃 너머 무엇이 있는지 호기심 많던 벌이 덤불을 젖혀 그 안을 볼라치면 가시는 장막을 친다.
타자에게 드러내 놓고 싶지 않은 자기 본능적 방어 속성.
2019. 04.05
<칡덩굴과 노란 호스>
분명 내 몸 이곳에 와 이런 상황 만든 적 없고,
그냥 가던 길 눈에 띄어 미천한 잔재주로 담았을 뿐이오.
소인 그다지 한 것이 없으니,
기생한 것은 명료히 맞는데,
공(zero)께서는!
이것이 어찌 보이냐고 하문하시면 어찌 답할지 모르겠소이다.
소인은 이걸 담기 위해 기생했기에 기생으로 보일 수 있을 터인데,
중(가운데)에 서있는
공(zero)께서는!
공생이라 생각하시오?
기생이라 생각하시오?
2019. 04.07
저도 한때는 사람들에게 전기불꽃을 밝혀주는 그런 놈이었어요.
다리 건너 굴뚝 친구들이 보낸 전기로요.
이렇게 흉물스럽지 않았다니까요.
한창때는 참 짜릿짜릿한 나날을 보냈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자리엔 아파트가 들어섰다-
2019. 04.11
<순이 이야기>
어느 전시 작가 다랭이 논 의뢰를 받아 프린트와 리터칭을 하고 있다.
논마다 같은 톤을 분리하기 위해 퀵 마스크로 선택하고 톤을 조절하고, 먹이 찾아 노니는 수 백 마리 오리들을 지우고, 어설픈 물 그림자를 지우거나 덧대고, 구멍 난 논두렁을 때우며 거의 하루를 다랭이 논들과 씨름했다.
필름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작업하는 것이 여간 곤혹스러운게 아니지만 즐겁기는 하다.
<순이>
우리와 20년을 함께 살았던 칡소 순이가 생각이 난다.
들과 산에 싹이 틀 이맘때쯤 내 고향 양평은 모내기하기 전 소를 끌고 써레질이 한창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이면 흙투성이가 된 다리를 우물가에서 씻고, 종일 일했던 순이에게 여물 한 삼태기를 퍼다 주었다.
때론 간식으로 콩이나 옥수수도 주고 그랬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하셨다.
학교를 다녀오다 소가 좋아하는 풀이 있으면 한 아름씩 뜯어 갔다 주곤 했다.
침을 흘려가며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았디.
순이는 원치 않은 임신(인공수정)도 많이 해 송아지도 많이 낳았다.
시골 소라는 것이 송아지가 어느 정도 크면 소 장수에게 팔았다. 그땐 그게 꽤 큰 돈이었기 때문이다.
어미는 없어진 새끼를 부른다고 보름은 음매 음매하며 불렀다. 참 씨끄러웠다. 그만 울라고 혼내기도 했다.
그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가혹한 일인지 그땐 몰랐다.
그렇게 오래 같이했던 순이가 너무 늙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게 돼 소 장사에게 넘기게 됐다.
팔기를 결정하는데 엄마와 아버지는 많이 싸우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고생한 녀석을 어떻게 파냐고 하셨고, 엄마는 쪼들리지는 않지만 넉넉하지 않은 뻔한 살림에 돈은 필요했다.
팔려 가던 아침되었다.
순이는 버티고 버티었으나, 고삐에 꿰어있는 소 잘 다루는 소 장수에게 어디 당할 제 간이 있었겠는가.
그때, 정말 순이의 큰 눈에 눈물을 흘렸다.
동물이 눈물 흘리는 것을 처음 봤다.
참 충격적이었고 가슴 아픈 상황이었다.
순이는 마을 여우 고개 넘어갈 때까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소 장사 차를 한참 바라보셨고, 엄마는 부엌에서 '너무 오래 정이 들었어, 정이!'하며 너무 미안해하며 한참을 우셨다.
아버지는 한참을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어딘가 숨어 우셨던것 같다.
그리고 며칠 흐른 후 밥상머리 앞에서 엄마에게 '소는 이제 어떻게 돼?" 물었다.
“너무 늙어, 라면 스프용으로 쓰겠지" 하셨다.
그 말은 나에게 참 충격적이었다.
그 뒤로 라면을 먹지 않았다.
지금도 라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맛은 있지만 라면을 먹을 때 마다 순이 모습이 스쳐 생각나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늘에서 아버지랑 순이는 고단한 일은 하지 않고, 그냥 순이 데리고 다니며 풀 뜯어 먹이고 꽃 놀이 다니실 것 같다.
순이에겐 고삐는 없는 모습으로.
저승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있었으면 좋겠다.
2019. 04.14
<칼끝과 붓끝>
칼은 숫돌에 갈리고,
붓은 종이에 갈린다.
화가의 날선 붓끝은 칼끝과 같으니,
동강의 붓끝은 종이의 공간을 가른다.
사진의 날선 칼끝은 눈빛과 같으니,
나의 눈빛은 시간으로 공간을 가른다.
그 날선 예리함에 살을 베어도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동강 선생님 작업실-
2019. 05.10
<阿里(아리)와 여자 아이 妮妮(니니)에게...>
얼마 전 중국 스튜디오 샘플 촬영한 사진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날씨가 참 얄궂었다.
현자들은 그 사람을 알려면 뒷모습을 보라 하셨다.
아이들의 뒷모습은 어른과 달리 앞 뒷모습이 같다.
그래서 유진 스미스의 '낙원으로 가는 길' 사진이 감동을
안겨다 주었는지도 모른다.
*남자아이 阿里(아리)와 여자 아이 妮妮(니니)에게...
그토록 순수했던 너희들이 어른으로 자라면서
온갖 짓궂은 날씨의 거칠고 혐오스러운 세상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어떤 상처를 받고도 의연하고 옳은 일에 대해 움직이는 데 있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바라며,
상처를 받아다 하더라도 아문 자리의 딱지는 갑옷으로 무장된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의 그 순수했던 기억 또한 언제나 같이하기를 바란다.
-멀리 한국에서 삼촌이-
나도 너희들 만할 때가 있었는데...ㅠㅠ
*조명지원: 현대포토닉스 이종산 부장
2019. 06.10
< 0 = ∞ : 영은 무한대 >
비는 커튼으로 장막을 친다.
바람은 앞 산 덮은 나뭇잎을 홑이불처럼 뒤집어 놓는다.
켜켜이 쌓여 늑체된 빗물은 마름질하듯 둑으로 토해낸다.
앞 산기슭 뻐꾸기는 둥지를 찾아 헤맨다.
처마 끝 빗방울이 졸음에 겨운 듯 떨어진다.
을씨년의 적막이 살갗을 파고드는 것이 사뭇 진진하다.
2019. 07.09
처음 이것을 봤을 때 웃음이 나온 게 아니라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말 웃을 일이 아니다.
사람의 발길이 닫기 힘든 섬에 가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곳의 풍경에 매료되기 전 해안에 밀려와 있는 쓰레기에 감탄을 자아낼 것이다.
***
어떤 새의 알인가요?
2019.07.09
<왼쪽 어깨까지 죽어 가는 소나무>
돈이면 다 되는 물질의 세상이 되었다.
그것으론 행복도, 사랑도, 자유도, 건강도 살 수 있는 세상은 되었다.
나도, 당신들도 그것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도 되었다.
나에게도 자유롭게 딸랑 하나 남은 것은 '자유의지' 밖에 없게 되었다.
인문학이 부재된 경제 논리의 인간에 대한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었다.
아파요.
아파요.
아프다니까요?
시름하던 나무 아래에서 시시덕 거리며 멱 감던 아이들조차 볼 줄도, 들을 줄도 모르는 메마른 세상이 되었다.
몸만 물속에 있을 뿐, 감정은 메마른 모래밭에 있게 되었다.
어떤 누가?
이것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을 했단 말인가?
어쩌다가?
어쩌다가?
나이만 먹은 사람들은 많게 되었고,
어른은 없는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어쩌다 어른이 된 소년이 세상에게-
2019. 07.02
2019.07.09
<꽃 밭에 있는 폐쇄된 어느 정류소>
기다려야 하는 것은 지독한 희망 고문이다.
에스트라공이나 블라디미르, 꼬마 인간처럼 멍청한 인식의 오류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기다리다 지쳐 쓰러지기 전, 정류소를 떠나 그것을 찾으러 갔어야 했다.
차라리 그것이 뒤늦게 찾아와 기다리게 하는 사태가 발생되더라도 말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애타게 기다렸던 사람은 누구였던가?
있었다 했을지라도 오지 말았어야 했을 그것이었을 것이고,
올 수 없는 곳에 있을 그것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오기도 전 등 돌려 가버렸을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던 그것이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과,
내 손에 잡히는 것과,
내 귀에 들리는 것만 믿어도
버겁게 짧은 시간이다.
2019.07.02
2019.07.20
2019.07.13
만 원에 4개.
만 원의 행복.
사진의 Light Trail 기법으로 아빠를 위해 허공에 빛으로 벽화를 그려줬다.
녀석 하고 놀고 나면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엄마 얼굴을 기억 못 하기 때문이다.
그 품의 따듯함도 못 느낀다.
그래도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지켜 줄 것이다.
2019.07.20
2019.07.15
한 송이 홍매화를 피우기 위해
녀석은 빨대를 꽂고 그렇게 빨았나 보다.
내 몸은 꽃밭이 되었다.
‘모기 이 쉐이들...’
2019.07.20
'얼굴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 했다.
그만큼 인물의 모든 것이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눈이다.
신체에서도 유일하게 내부 기관과 직접 연결되는 곳도 눈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을 대부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예쁘지만 사악한 눈, 포근하지만 차가운 눈, 그윽하지만 칼 날이 숨어 있는 눈,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 다양하다.
인물 상업 사진가에게 눈 리터칭은 가장 난해하고 어렵다.
그래서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멍청하게, 똑똑하게, 놀라게, 황당하게 만들 수 있는 동공, 그의 지문과 같아 정체성을 만들어 주는 홍채, 미학적 완성의 캐치 아이.
그리고 그를 온화하게, 살기있게 할 수 있는 공막.
절대적 공식은 없고 상대적 공식만 존재하는 각 부의 위치와 톤의 배합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 의학 해부학이야 기본이었고, 관상학, 미용 성형, 한국 인물화, 서양 중세 인물화를 공부해야 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뎃셍을 실패하며 찢어 버진 수천 개의 눈 알들.
스승이었 던 김 헌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답습하듯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렇게 동문 수학한 사람들 중 그것을 온전히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달랑 서너명 밖에 안 남았다.
한 사람은 열심히 사진관을 운영하고, 한 사람은 여기서 가르치고 있다.
사진값이 바닥을 친 요즘 시대에 누가 이렇게까지 공부하며 상업 인물 사진을 찍고 수정을 하겠는가.
밥 굽기 딱 좋은 과정인 것을.
그동안 배워 보겠다고 찾아온 사진가들 중 끈질기게 끝가지 한 사람이 없었다.
다들 중도에 포기하거나 적당한 선에서 마감들을 했다.
그들을 탓하거나 원망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자기 편리대로 생각하고 사는 것이 거늘.
수업을 하다 보면 다들 하는 소리.
'눈 수정 아무리 해도 잘 안돼요?'
'그럼 딱 3천 개만 그린 다음 투정하세요'
그게 내 답변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그냥 하는 것이다.
눈 수정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끌어올리는 것이다. 예쁜게가 아니라 아름답게 말이다.
수정 후 그의 안광(眼眶)이 달라졌다면 차라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상업사진이 어디 그런가?
예뻐야 뒷탈이 없는 것을...
어째든 인물 리터칭의 본질이 그렇다는 것이다.
상업 사진 수업은 예술가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장인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래서 예술품이 아닌, 귀한 보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장인이 해야 할 최종 목적이며 덕목이다.
상업 사진계에 그런 의식을 갖고 좋은 사진을 만드는 장인정신 사진가가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공재 윤두서 자화상은 실로 형언할수 없을 만큼 세계 최고다. “
***
사진관에서 인물 사진 잘나오법.
* 여자
1. 벨벳 옷 입지 마세요 - 빛을 다 먹어 질감이 없어요.
2. 목 폴라 입지 마세요 - 목선이 나와야 여성스럽습니다.
3. 펄 화장 하지 마세요 - 조명 반사로 얼굴에 구멍이나요.
4. 물광 화장하지 마세요 - x기름 흐른것 같아요.
5. 써클렌즈 하지 마세요 - 사람 같지 않아요. 무서워요.
6. 배란기때 찍으세요- 가장 예쁘게 나옵니다.(성희롱 아닙니다. 오해 마세요.)
* 남자
1. 면도하고 오세요 - 지저분함.
2. 콧 털 깍고 오세요 - 더러움.
* 공통
위 모든 사항 다 필요없고...
"제발 웃으세요" - Help me...ㅠㅠㅠ
2019.07.20
2019.07.16
<낯선 모텔에서의 하루>
출장을 가면 모텔에서 자게된다.
계산을 하면 일회용품을 준다.
그 안엔 두 개의 칫솔, 두 개의 크렌싱폼, 한 개의 면도기, 한 개의 콘돔이 들어있다.
숙소에 들어가면 두 개의 베개, 두 개의 잠옷, 두 개의 컵, 두 개의 커피믹스가 있다.
그리고 쾌쾌한 냄새들.
조약 손만 한 창문.
아직 마르지 않은 욕실 바닥.
어설픈 인테리어,
정확한 위치에 있는 물건들.
나에게 외로움이란 고독이라 정의 내렸으나, 공간의 이동으로 고독이 변질됐거나, 아니면 실체를 드러낸 듯 너무나도 낯선 공간이다.
-청주 출장을 마치고-
2019.07.20
<2019년 4월 18일. 304비상대책위원회 카카오톡 단톡방에 올린 글>
예술가라는 사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특이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예술가란 직업?
특별한 직업이 아닌,
특이한 직업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이 세상의 한 구성원일 뿐입니다.
예술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죄악을 물리치고 아름다움을 보여줄 막중한 의무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공예 작가는 그름의 뼈를 옮음의 칼로 깎고 있으며,
도예 작가는 그름의 살을 옮음의 살로 붙이고 있으며,
회화 작가는 그름의 옷을 옮음의 붓으로 칠하고 있으며,
사진 작가는 그름의 몸과 옮음의 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처절한 싸움이지만,
우리는 지금 최고의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중입니다.
끝까지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봅시다.
우리 새끼들이 돌아 올 때 까지...
<2019.07.18. 감사의 글>
그동안 피해 작가에서 많은 위로와 응원과 염려를 해주신
모든 분들께 대표로서 38명 작가들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세상은 선과 악이 팽팽하게 공존하는 상태지만,
작은 빛이 어둠을 사라지게 하듯,
우리는 아주 작은 불씨 하나를 밝혔을 뿐입니다.
언젠가 그 빛이 여명이 되어,
더 이상 '장님의 나라에서 외눈박이가 왕이 되는 일'이 없고,
우리와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304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정대 올림-
2019.07.24
<공감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인간은 타자의 고통과 기쁨에 대해 공감한다.
생물에게만 공감을 느끼는 부류가 있고,
무생물에게도 느끼는 부류도 있다.
일부 특이한 유전자를 가진 부류는 자신의 고통 이외에는
느끼지 못하는 돌연변이도 있다.
그런데 그 일부 돌연변이를 위해,
무생물에게도 느끼는 부류가 타자에게 고통을 줘야 할 때는
팽팽한 갈등 속에서 몹시 괴로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런 부류의 인간은 어김없이 그 고통을 스스로 끌어안고 만다.
비가 내렸다.
담벼락 뒤에도 비가 내렸다.
2019.07.26
<통념에 대하여>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여자들이 브래지어를 안 한다 해서 이상하게 생각 본 적 없다.
그렇다고 그 여자가 페미나스트거나 자유분방한 여자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한 여름 얼마나 덥고 갑갑할지 걱정된다.
미착용하고 얇은 옷을 입으면 젖꼭지가 튀어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남성이 그 모습에 성적 흥분을 하거나 음흉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한 젊은 아낙이 가슴을 내놓고 젖 먹일 때 그걸 보고 충동을 느끼는 남자 또한 많지 않다.
오히려 아름다워 더 보게 되는 것이지 침 흘리며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부 몇몇 남자들이 그런 것이다.
대부분 남자들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설령 노브라로 젖꼭지가 튀어나왔다 치자,
있는 것이 나온 것인데 그걸 어쩌란 말인가.
테이프로 붙이고 다닐 수도 없는 것인데 말이다.
브래지어가 가슴 보호를 위해 방탄 성능이 있는 것이라면 몰라도 오랜 관습과 통념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 설득력이 없다.
또한 노브라 여성을 정숙하지 못하다는 성적 비하는 아주 잘못된 표현이고 무식한 소리다.
노브라가 유방암 예방에도 좋고, 뇌로 가는 혈액 순환에도 좋은데 굳이 그 오랜 통념 때문에 불편과 건강을 해하며 찰 하등의 이유가 없다.
좋다:나쁘다.
옳다:그르다.를 떠나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대해 존중하면 된다.
나는 약 15년째 팬티를 입지 않는다.
남자는 그곳이 덥고 습하면 좋지 않기에 노팬티는 통기성이 좋아 건강에 좋고, 매일 빨래 안 해서 수질 환경에 도움도 된다.
오랜 내 임상실험 결과를 비춰 봐도...
왜?
팬티를 입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2019.07.28
매력은 이방성(異方性)에서 나오고,
신뢰는 등방성(等方性)에서 나온다.
-붉은벽 능소화와 소나기와 자전거를 구경하다 문득-
2019.8.07
매력은 이방성(異方性)에서 나오고,
신뢰는 등방성(等方性)에서 나온다.
- 시멘트로 만든 규칙된 벽돌과 불규칙한 시멘트 틈과 붉은 바닥과 붉은 샌들을 신고 붉은 3호선 안국역 5번 출구 앞에서-
2019.8.11
아침 7시.
어김없이 볕은 뻔뻔스럽게
창문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민다.
이미 줄이 끊어진 지 오래된 기타는
내가 짝사랑했던 것을 모른 체
턱 하니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아직도 외사랑 중인 사진은
시간 암살자답게 흐름을
정지시켜 버렸다.
그렇게 짝사랑만 했던
음악은 이미 포기했고,
여전히 외사랑 중인
사진은 유혹에 넘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 사랑.
그것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2019.8.11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100년간 한국의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은 바닥을 쳤습니다.
국사를 필수 과목에서 제외하려는 사태도 벌어졌었고,
역사 교과서 문제로 씨그러운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천왕에게 혈서까지 쓰며 충성 맹세를 했고, 훗날 자신 신념을 나눈 동료를 모두 고발하고, 민족 통합을 하려했던 특사를 간첩으로 몰아 사형을 시키고, 한 국가의 독재자였던 그 딸은 다시 대통령이 되는 사태도 벌어 졌습니다.
동북아시아 격동의 30년에
위정자들은 수 없는 훈장을 받았으며,
심지어 교과서에 인물로 등장했으며,
현충원에 묻히기도 했습니다.
매국한 자손은 국가를 상대로 토지 청구 반환 소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친일이 작곡한 애국가를 불러야 했습니다.
그런것을 거부했던 나에겐 빨갱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아베 신지 총리님!
당신이 생각하기에도 우리의 근대 역사는 비웃을 만한 일들이 수 없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당신 나라에서 벌어졌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그런데.
이번 사태 덕분에 우리가 그동안 잃어버린 역사가 바로잡히고 바로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추구하는 제국주의로 인해
다시 우리를 100년 전 처럼
참탈할 야욕을 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니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며칠 후면...
74주년 815 <광복절>입니다.
74주년 815 <독립절>이지 못한 점이 아직도 안타깝습니다.
토인비가 이야기했듯 '역사는 수레바퀴와 같다.'
그 역사가 다시 되풀이된다면,
그때 우리는 "반드시 독립'를 이룰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당신을 침탈한다면,
당신들도 독립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설령 우리가 당신 나라를 침탈해
이성을 잃고 강제 동원했다면,
훗날 그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과 사과를 할 것이며,
강제 동원된 위안부에게는 용서를 받을 때까지 사과할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사과를 했다고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는!
상처 받은 사람이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입니다.
사과에 자존심이 배당되면 안됩니다.
우린 아직 당신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시 손 잡고 가기를 바랬습니다.
당신 나라에 가서 사진 강의도 몇 번 했고,
사진가들이 내게와서 강의도 몇 번 들었습니다.
저는 당신 나라를 좋아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당신들은 기술을 사랑하며,
그 가치에 대해 인정하고 충분히 지불합니다.
사제 간의 위계와 관계 또한 돈독합니다.
수백 년간 이어오는 가업승계.
대충 만들지 않는 장인 정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의식.
체계화된 일처리에 대한 메뉴얼.
우리보다 많은 무인도.
그런 당신들과 잘 지내고 싶습니다.
전쟁은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명분이 생기지 않게 해주기 바랍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적이 되어 싸워야 한다면,
당신 나라 역사에서 가장 두렵고 혐오스러운
적군이 돼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2019.09.07
담임 선생님께 카톡이 왔다.
딸이 장학금을 받았다.
매 학기마다 받았다.
독한 것~~ㅋㅋ
공부 잘해서 받았다.
기레기들이 왜 받았냐고 묻지는 않겠으나!
그러나...
증서에 "품행이 올바르고.."라고 쓰여있는데???
핸폰 그만하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다.
이 장학증서 내용 문제가 있다.ㅋㅋㅋ
<협회에서 개인정보보호 교육을 받아서 익명처리함>
그리고 백일장에서 상 받았다.
................................................................................
<내 이름은 사춘기>
내 이름은 사춘기
나는 입안에 고슴도치.
잔소리에 가시 곤두세우는
칭찬에 세운 가시 내리는 고슴도치.
세운 가시 때문에 아픈 사람은
결국 나.
나는 얼굴 위 가면.
감정이 가면 벗듯이 휙휙 바뀐다.
나도 모르는 내 감정 가면.ㄸ
어떤 때는 하회탈 쓰고 하하 호호
어떤 때는 양주 털 쓰고 흐의 어엉.
나는 얼굴 위 도화지.
도화지 위에 있는
빠알간 구슬 보기 싫어서
하얀 물감 바른다.
나는 마음 안에 갈대.
하루는 사과를 좋아해,
다음 날에는 복숭아가 좋아.
시도 때도 없이
마음 안에 바람이
세차게 분다.
2019.10.06
<무지의 소치>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과연 해결이 될까?
이미 늦었다.
10년 넘게 환경운동연합에 기부를 하고, 그린피스에도 하고 있다.
그러나 무인도 쓰레기 현장에 들어가 본 당사자는 이미 때가 늦었음을 알고 있다.
모래알, 자갈 빈틈없이 쌓여 있다.
400억의 클라우드 펀딩을 받아 야심 차게 했던
Boyan Slat의 오션클린업의 플라스틱 수거 방식도 포기한 상태고, 경남 거제와 마산 일대의 굴·담치·게·지렁이의 97%, 가장 깊은 마리나 해구, 사 먹는 생수에도, 가장 청정 지역이라는 생각했던 북극, 남극의 눈에서도, 실험 대상 인간의 대변에서 전원 검출됐다.
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유물은 수중에 있는 것에 5%도 되지 않는다. 바닷속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다.
정부도 환경에 대해 외치면 국제 사회에서 받아야 할 비난 때문에 그다지 열의적이지 않고,
유엔 기후 행동 정상회의 문재인 대통령 연설 내용도 일부 거짓말을 했다.
급성장한 경제로 편리만 추구하는 국민도 불편을 감내할 의식도 의지도 없다.
전 세계 4번째로 섬이 많고, 7번째로 댐이 많은 나라다.
플라스틱 소비국 1위.
해양 쓰레기 1위.
중국 쓰레기가 한국에 온다고?
그 대부분은 태평양으로 많이 흘러가고 우리나라 섬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육지에서 내려온 페트병과 기타 부유물, 특히 부이로 사용한 스티로폼이 거의 대 다수다.
방송에서 중국 문제로 자꾸 돌리려 하지만
이건 우리 치부의 일부를 교묘히 감추는 언론 플레이일 뿐이다.
우린 아직 덜 아픈 것이고, 덜 다친 것이다.
더 당하고 더 아파야 자신에게 닥친 위기감에 발등의 불끄듯하는 모양새를 보일 것이다.
내가 바라는 건 더 외면하고, 더 무관심해졌으면 한다.
그래야 더 아프고 더 다칠 테니까.
그게 가장 빠르게 정신 차릴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이미 ‘환경 불량국가’로 찍혔다.
한마디로 쪽 팔리다.
쪽 팔려서 카약 타고 쓰레기 줍는다.
2019.11.23
내 생에 새털 패딩 하나 산 적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그게 싫었다.
논리가 정립되지 않은 나이였을 학창 시절에도 그냥 이건 아니다 싶어 싫었다.
유일하게 산 것은 거위털 겨울 침낭밖에 없다.
한번 된통 당하고 나서 오지에 가서 얼어 죽지 않으려고 샀다.
그리고 친구가 그런 나를 보고 안 입던 패딩 하나 받은 게 전부다.
단순히 부산물을 얻기 위한 동물 사육은 무조건 반대한다.
에어컨도 올해 처음 달았다.
그동안 선풍기로 살았다.
더위를 덜 타기에 가능했을 수 있다.
그동안 에어컨 없이 산 이유는 단순했다.
0.000001° C 낮출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그랬다.
그러나 버틸만했던 올여름 그 신념은 무너졌다.
늦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속옷 입지 않은지 10년이 넘은 듯하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섬유 유연제의 독성을 알게 되고, 세탁시 발생하는 엄청난 미세 플라스틱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빨래 줄여야 한다는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미착용이 네겐 너무 편하고 좋았다.
오늘 길거리에서 밍크인지 담비 털인지 모를 코트를 입고,
매우 자극적인 향수 냄새를 풍기며 걷는 두 여인 뒤를 걷게 되었다.
향기는 꽤나 향긋하고 좋았다.
그러나
뒤태는 꽤나 역겨웠다.
명품 패션 업체도 더 이상 밍크, 담비, 여우 등 모피로 제품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지 꽤 오래됐는데,
우리는 여전히 패딩 천국이다.
한국이 패딩을 입을 만큼 극한의 날씨도 아닌데 말이다.
그 지랄 같은 유행.
“그런것을 입지 않는 것이 더 멋있고, 더 따듯한 가슴의 겨울을 보낼 수 있다.”
2019.12.05
다람베루 가는 길.
그것이 누리면 안 될 욕심임을 알기에
뭍에서 꽃 길만 걷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다만 큰 산 넘으면 평지라도 걷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것도 누리면 안 될 사치임을 알기에
물에서 순풍에 돛을 올려 가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바람이 안 불기보다 덜 불기를 바랐을 뿐이다.
뭍에서 바란 바램과 물에서 바란 바램이
얼마나 알량한 사치인지 모르겠으나,
그조차 향유하면 안 되었나 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山의 사연을 듣고 싶거든,
水에게 물어 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