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1.03
<어느 바닷가의 노부부 집>
영덕의 어느 바닷가 작은 구멍가게.
마당발치에서 보면면 야롯이 바다가 보인다.
부족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듯 그저 소박하다.
아랫목 덮은 이불속처럼 포근하다.
방안은 시린 발을 녹이며옹기종기이 모여있는 듯하다다.
아이는 새 둥지 튼것처럼냥 웅크리고 팔베개를 하고고 있다.
나도 이렇게 오손도손 살고 싶었다.
야롯이: 희미하고 희미하게 ( i=! 만듦 )
2017. 01.06
<글 맹글기>
글을 쓰다 보면 마땅한 표현이 없어 장황하게 풀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버린다.
최근 가장 잘 만든 것이 '겨봄비'와 '야롯이' 이다.
•겨봄비- 그 날은 비가 내렸다.
우산 쓴 어깨너비와 바짓단을 적실 만큼의 비였다.
겨울비 치곤 초봄에 내릴 듯한 따듯한 비였다.
•야롯이 - 여행 중 영덕 바닷가 어느 작은집 문간방 사이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있는 듯, 없는 듯 가늠하기 힘든 아른거린 빛이었다.
난 그 기억에 마땅한 표현으로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글씨는 참 못 쓴다.
2017. 01.06
<백일>
-나의 백일 기념사진-
그땐 몰랐다.
인생이 무엇인지.
사는 게 무엇인지.
그저 먹고 자는 것만 충족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책임질 것도 없었기에
언제나 가볍게 날 수 있었다.
성공에 대한 부담도 없었기에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할 수 있었기에
울고 싶으면 울면 됐다.
졸리면 그냥 자면 됐기에
잠자리 걱정도 없었다.
소유의 개념이라곤 엄마밖에 없었기에
졸졸 따라다니면 됐다.
나누는 개념도 없었기에
받는 것이 당연해 걱정이 없었다.
타인을 사랑할 필요도 없었기에
이별하고 아파할 필요도 없었다.
운명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그늘에 가려 슬피 울 필요도 없었다.
먹고 자는 것.
그 가장 중요한 것을 우린 이미 행복의 기본이란 걸 그때 알았다.
인간이 아무리 철학을 논해도, 예술을 향유해도,
어차피 우린 가장 근본적인 것이 해결 안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알게 된다.
어찌 보면 힘이 들 때 우린 어미의 자궁을 찾아 들어가고 싶은 것은
가장 본능이라 어느 철학도가 이야기했다.
"저 녀석이 나였구나?"
2017. 01.17
<네비게이션>
내비게이션은 목적지를 안내한다.
최적의 길을 안내한다.
위험 구간, 사고 다발 구간, 과속 방지 등 운전자가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안내한다.
그러나 우리 삶의 길을 제대로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은 없다. 혹시나 하며 주역과 점이라는 내비게이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이 길로 가면 이렇고, 저 길로 가면 그렇고.
이 길로 가면 그럴 것이고, 저 길로 가면 이럴 것이라는 안내받고 싶어 한다.
설령, 그 안내가 틀린 경우라도 우리는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
비록 운명의 '운運'과 운전의 '운運'은 같은 것이지만,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명命'이라면 그 길밖에 없다.
설령,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일을 겪게 된다.
(옛 고사에 어느 부잣집 대감이 쇠뿔에 죽을 운명임을 고승에게 들었다.
그는 모든 소를 단단히 묶었다.
하지만 결국 쇠뿔에 죽었다.
간지러운 귀를 어찌하지 못해 귀를 후볐다.
바람에 닫힌 문이 후비던 손을 쳤다.
귀를 세게 찔렀다.
쇠뿔로 만든 귀 후비 개였다.
이것이 '명命'이다)
그 길에서 위험 구간을 부득이하게 만날 수밖에 없이 안내받았다면,
그 구간이 왔을 때쯤 조심하며 슬기롭게 안전하게 넘으면 된다.
그것이 우리가 미래를 조금이라도 미리 알려는 근본적 목적이고, 전달하려는 것이다.
내가 공부하며 깨달음은 것이 이것이다.
2017. 02.01
<아버지 계실 때>
눈이 오면 언제나 아버지는 앞마당부터 마을 회관 어귀까지 치우셨다.
언제나 마을에서 우리 집이 가장 먼저 눈 쓸던 빗자루 자국이 선명했다.
그렇듯 부지런하셨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언제나 마을 회관까지, 이웃집 대문 어귀까지 치우셨다.
그러셨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자랐고, 자연스레 나도 아버지처럼 그렇게 했다.
그건 이유가 없었다.
그냥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눈이 오면 치웠다.
눈 치우는데 아이가 같이했다.
아이도 당연한 듯 따라 한다. 내가 아버지와 했던 것처럼…. 당연한 것엔 이유가 없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닮고, 제자는 스승을 보고 닮는다.
'내리사랑'은 그렇듯 상대를 변하게 하고 닮아가게 한다.
고향에 눈이 많이 왔다.
2017. 02.02
<첫 교복>
예쁘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뭉클합니다.
오늘 세상에서 가장 예쁜 옷을 보았다.
'벽엔 아이의 돌사진이 걸려있다.'
2017. 02.06
<자유와 고독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
글쓰기,
책 읽기,
사색하기,
음악 듣기,
소리 듣기,
기타 치기,
여행하기,
낚시하기,
오지 탐방,
산 타기,
계곡 클라이밍,
사진 찍기,
사람 만나기,
골목 다니기,
전시 보기,
수다 떨기,
산책하기 등을 좋아했던 나다.
이 교감의 풍요를 그동안 소홀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분배돼 있는 정해진 유한의 산물이다.
덤으로 주어진 시간에 보답하기 위해, 소홀의 빈칸을 메우기 위해,
모든 것을 다시 차근차근, 차곡차곡할 수 있도록 풍요의 충만 속으로 간다.
"나를 강하게 한 것은 자유와 고독이다."
2017. 02.06
<신발>
고흐의 <신발> 고흐의 정물화 중 하이데거와 샤피로뿐만 아니라 많은 미술사학자가 가장 많은 논쟁거리를 불러일으킨 낡은 한 켤레의 그림이 있다.
같은 그림으로 다양한 해석을 했겠으나,
고흐가 누구의 주장에 옳다고 손을 들어 주었을지 모르지만,
분명 신발 주인 삶과 삶으로 찢기고 달아버린 감사와 측은지심에 대한
애도의 마음으로 그린 것은 분명하다.
<정대의 신발> 20살살 때부터 어느곳에 가던 등산화를를 즐겨 신었다.
당시 산과 여행을 좋아해 많이 다닌 것도 있었으나,이런, 거칠고 투박한한 신발을 신으면 거칠 것 없이 어디든 갈 수 있을 듯한 든든한 버팀목 같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군 복무 시절 전투화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었다.
20년간 간 다섯 켤레 등산화를 소진했다.
사진이 직업이 돼버린 지금, 예정 없이 험곳에 가야가야 하고,
왼쪽 발목 인대가 조금 늘어난 상태에 목 긴 등산화는 내 신체를 보호뿐만이 아니라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는 중요한 동반자다.
4년 전 샀던 머렐 등산화.
이것을 신고 길인 곳도, 아닌 곳도 무수히 헤쳐가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무수한 발자국에 사연 없는 흔적이 있겠는가.
이제 너무 낡고 헤지고 찢어져 볼품 없고, 빗물이 새고 더 이상 신기에 부족한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오늘늘 새 신발을 주문했다.
새 신은 무수한 흔적의기억을 나와 함께할할 것이고, 또 때가 되면 다른 신이 내 발을 감싸 줄것이다…. "머물지물지 마라"
"신발은 주인의 발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달려한다.한다"
이제신발과 구별의고별의 시간을 갖는다.
고흐가 신발을 그리던 마음처럼…....
2017. 02.09
<손 편지>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얼마 뒤 있을 아이 졸업과 잘 자라준 고마움과 감사함을 담아.
꽃 편지지 고르는 내내 약간의 떨림을 그대로 간직하며,
낙엽 삭은 빛깔 닮은 예쁜 브라운 잉크와 종이 가르는 사각거리는
울림 좋은 펜촉으로 한 땀 한 땀 눌러써 내려간 편지는 한 장을 넘어 두 장을 채웠다.
봉투엔 풀을 바르고, 우표엔 침을 발라 꼭꼭 눌러 붙였다.
아침 밝으면 빨간 우체통 찾아 코트 안주머니 가슴 온기로 따뜻해진 편지를 넣는다.
며칠 뒤 우체부 아저씨가 건네줄 편지를 받고, 기뻐할 아이의 미소를 그리며.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2017. 02.12
<엄마와 오곡밥>
엄마는 꽃이었습니다.
예뻤던 꽃잎은 지고, 씨앗을 남겼습니다.
꽃이 남긴 씨앗은 언제나 우릴 배부르게 했습니다.
엄마는 꽃이었습니다.
그 꽃보다 아름다웠던 꽃이었습니다.
2017. 02.12
<귤란(橘卵.Tangerine Egg)>
이것은 알(卵.egg)이다.
이것은 알(卵.egg)이 맞다.
귤나무가 낳은 알(卵.egg)이다.
2017. 02.26
<二冃好>
낮이 밤을 시샘하여,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진다.
먼발치에서도
자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봄이 오는 소리다.
2월이 좋은 것은,
여느 달보다 이틀이 짧아,
겨울은 일찍 가고,
봄이 일찍 오기 때문이다.
2017. 2.26
i = !
2017. 02.26
<비 오던 어느 날>
비는 커튼으로 장막을 친다.
바람은 앞산 덮은나뭇잎을
홑이불처럼 뒤집어 놓는다.
켜켜이 쌓여 늑체된 빗물은
마름질하듯 둑으로 토해낸다.
앞 산기슭 뻐꾸기는
둥지를 찾아 헤메인다.
처마 끝 맺힌 빗방울이
졸음에 겨운 듯 떨어진다.
을씨년의 적막이
파고들어와 사뭇 진진하다.
2016.05.20
2017. 04.29
<기억. 그 소담스러움에 대하여>
구하던 책이 없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동대문 헌책방 상가를 둘러봤다.
없다.
그러던 중 20여 년 전 주로 이용했던 헌책방은 아직도 있었다.
단골이었기에 아저씨에게 주문하면 며칠 또는 몇 주 뒤 책을 구해 놓으셨다.
이젠 그곳에 아저씨는 없고, 그의 아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와! 아직도 하고 계시네요?"
"오랜만에 왔나 봐?"
"네! 20년 만일걸요?"
그의 아내는 나를 반겨준다.
"아저씨는요?"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가신다)
"응! 아저씨?" "몇 해 전 췌장암으로 고생 많이 했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책을 훑어보던 중 꽤 괜찮은 '르네상스 미술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이 책 하나 사야겠어요?"
"그래? 음~~이거 사만 원짜리 새 책인데, 그냥 만 원에 가져가"
책 방을 지키는 아내는 이곳과 떠난 남편을 기억해 주는 '기억의 고마움'에 감사를 표한 듯,
20대 청년이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손해 보지 않을 만큼만 남기고 책을 주셨다.'
난 가던 길을 가는 내내.
4월 어느 봄날의 햇살은 유난히 따듯했고, 머리카락 살 방으로 날리는 바람은 솜털같이 포근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히 잘 계세요.
2017. 07.09
네 이 년!
이실직고 못 할 까?
사람이냐? 개미핥기냐?
2017. 08.10
<신발>
광화문 집회를 마치고 주변 쓰레기 정리하고 '이승주 작가 제도 위원장'님과
차를 마시러 서촌에 잠시 들렸다.
커피숍에 들어가려는데, 어떤 여자분이 나를 부르셨다.
왼손은 6살 정도 딸아이 잡고 있었고….등에는 1살 남짓한 남자아이를 업고 있었다.
"저 죄송한데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 신발 상표가 뭐예요?"
(아기 엄마의 질문이 좀 황당하긴 했지만, 그다음 대답이 참 아름다웠다)"저희 남편 사주려고요"
'00 거예요."….그 남편분은 '발은 시원하고, 가슴은 따듯한 여름나기를 하실 것 같다.
"원래 신발 치수보다 5mm 큰 걸로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