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1.20
<!>
누워서 많이 울었지.
눈물은 흘러 귀밑머리를 지나 귀로
들어갔지.
오직 내 귀만이
내 흐느낌을
들을 수 있지.
2012. 02.04
2012. 02.12
<美 & 美>
예뻐진다는 것은 참으로 숨 막히는 일이지!
2012. 04.01
<첫 메일>
아이들을 못 본 지 한 달이 된듯하다.
무엇이 그렇게도 찾아가기 힘들게 하였던 건지 모르겠다.
어제 딸아이에게 메일이 왔다.
맞춤법이 틀린 "아빠 언재와"라는 내용과 함께 그림엽서 메일이 왔다.
그림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승현이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을 이 그림엽서.
어느덧 2학년이 된 아이가 대견하지만, 점점 자아를 알아 가는
아이를 보면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다.
오늘 준경이를 데리고 승현이가 있는 양평에 가기로 했던 날이다.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몇 시쯤 데리러 올 거니?"
준경이가 아빠가 온다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누나와 통화하며 들리지 않는 누나의 가슴 메는 목소리에 간단하게 통화하고 끊어버렸다.
그리고 한참 혼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는 영적 진화를 위해 이런 저런 시련을 준다고 한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냥 그것이 내 카르마라고 생각해 버리면 내 마음은 약간의 평온함이 다가온다.
2012. 04.19
<이사>
이사 당일 책장 벽 구석에 낙서한 딸아이의 낙서를 보았다.
약 3개월 가량 되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1년간 잘 버텼지만 어느날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1년간 나는 내려놓았단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려놓은것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음에 반항하지 못한 무기력증에 있었던 것이고,
이것을 알았을 때 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던것 같다.
이사를 앞두고 한달 가량 심리 상태는 극에 달했다.
방안에 우둑커니 앉아 있으면 눈물이 났고, 음악을 들어도 눈물이 났고, 운전해도 눈물이 났고,
밥을 먹을 떄도 메인 목으로 밥을 삼켯다. 그렇게 하루에 몇 번의 반복된 심리적 트라우마는 나를 힘들게 했다.
어리광 부리는 모습, 학교가는 모습, 칭얼대는 모습, 아이들의 살 내음도 너무 그리웠다.
예전과 다른 가슴 저편 넘어에서 올라오는 흐느낌과 아픔, 괴로움이 물밀 듯이 한 순간에 밀려 왔었다.
겨울이 지나면서 우울증이 극에 다다른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고 어떠한 조치도 취하고 싶지 않았다.
이사하기 얼마 전 부터 바보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죽으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아이들은 어떡하지?
어떡해 해야하지?
내 운명이 원망스럽고 다 버리고 홀로 산으로 아니면 섬으로 숨어 버릴까하는 생각도 했다.
길잡이는 나를 왜 이토록 힘들게만 했는가?
이렇게 힘들어야 영적 진화를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었다.
이사를 가기 싫었다.
가족들과 좋았던 이런저런 추억이 나를 잡았고, 그래도 여기서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 내면서 지냈지만,
같이 있을 수 있었다는 감사함등의 미련을 떨칠수 없었던 그리움을 나를 힘들게 했다.
그리고
"아내가 이 집으로 다시 돌아 올거야?"
다시 돌아 올거야?
저 현관문을 열면서
"나 잘 다녀왔어"
라고 하면서 활짝 웃는 모습으로 들어올 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재건축을 할 건물에 남아있을 수도 없었다.
어떡하지? 여기에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사하면 나를 찾아오지 못할 텐데?
그렇게 나는 지금을 보지 못하고 그렇게 지냈다.
엄마 생신이라 고향에 갔다.
서울에 올라오는 날 엄마가 처음으로 힘들게 말을 꺼내셨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니, 그만 생각하고 아이들 생각해서 정리해라"라고 하셨다.
"알았어요"라는 대꾸 조차 하지 않고 외면했다.
어떤 의미인지 알고있고, 어떤 마음인지 알고있다.
"알고 있지만, 그렇게해야 하지만" 나는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 오는 내내 가슴만 미어졌다.
사람들이 왜? 극단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자살을 선택하는지 알았다.
"너무 살고 싶었지만 그것이 안되었기에 그런 결정들을 내린다"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이사 전 날
아내의 유품 상자를 다시 보면서 한 참을 앉아 흐느끼다 나도 모르게
한 동안 읽다가 덮어 두었던 책을 펼쳤다.
아마도 그것이 내 길잡이 영혼이 나를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많이 아팠으니 너는 영적진화가 조금 되었고, 이제 그것을 치료하라고 아니! 완화하라고 길잡이를 했던것 같다.
『영혼에게 슬픔은 사랑의 표현이고, 모든 사랑의 표현은 곧 치유이다.
슬픔에 저항하는 것은 사실 그 고통의 에너지로 둘둘 싸서 외딴 곳에 놓아두는 것이다.
우는 것은 그처럼 단단히 뭉친 에너지를 풀어 버리려는 몸의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눈물은 에너지가 계속 흐를 수 있게 해주며, 그리하여 더 깊이 치유가 일어나도록 돕는다.』
『슬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꼭 울어야한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비물질적 차원에서, '~해야한다'는 에너지는 진정한 치유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해야한다'는 것은 마음의 과정을 통제하려는 머리의 지적 구성물이다.
스스로에게 무엇을 '해야한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말하는 것은 머리로 우리 행동의 진동수를 조정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보다 훨씬 더 중용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어떠한 진동수로 하냐이다.
울음은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감정의 표현일 때 치유의 역할을 한다.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우는 것은 껍데기인 나(ego)를 통한 울음이요 껍데기인 나와 함께하는 울음이다.
반면 울고 싶어 우는 것은 부드럽고 애정 어린 손길로 스스로를 보살피는 것이다.』
『영은 결코 우리를 슬픔속에 내버려 두지 않는다.
누구도 홀로 우는 법은 없다.
'외로이' 우은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실은 길잡이 영혼들, 천사들,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는 따뜻한 가족들에 둘러 쌓여있고, 그들 품에 안기어 있다.
몸은 죽지만 사랑은 죽지 않는다.
우리가 영혼계에 돌아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생각의 에너지는 그들을 우리 곁에 불러들인다. 』
『사람이 죽는 것은 그 삶에서 얻을 것을 모두 얻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마세요."
발러리의 영혼이 우리에게 해준 말이다.
이 확신에 찬 조언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해 원망할 것이 없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가끔 죽음을 부른 사고나 상황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수가 있는데,
그것은 그저 우리가 사랑한 이들이 태어나기 전 계획한 일종의 출구일 뿐이다.
스스로 누군가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거나 그 죽음을 막았어야 했는데 막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 점을 말해주고 싶다.
누구고 동의 없이는 죽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을 알때에만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그리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 지혜롭게 삶을 계획했다는 믿음과 신념이 있다면,
우리가 사랑한 그들이 이 삶에서 애초에 찾던 성장과 아름다움, 풍요로움을 모두 누리고 갔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계획한 그대로 살았음을 알고 평화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앎과 평화를 우리와 나누고 싶어한다.』
-본문 중에서.-
내게 많은 위안이 되었다.
왜? 알 수 없는 슬픔이 나를 휘감았고 그렇게해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이 세상에 없었을 지 모른다.
나는 나(ego)에게 감사하고, 나를 보살피려고 보둠었던 스스로의 나에게 감사한다.
이제 마음은 많이 차분해 졌고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내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고, 원망할 필요도 없고, 앞으로 책임질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를 위해 살아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내가 지금 해야할 모든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내는 계획했던 삶이 모두 충족했기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을 뿐이라고...
이제 이전보다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나는 나를 보고 느끼고 있다.
지금은 약간의 치유 단계이지만 언젠가 치유를 넘어 그 충만함이 나를 채우기를 바라면서 오늘을 감사하며 살아간다.
비록 그것이 다시 반복될 지라도...
앎이란?
머리로 알던것이 가슴으로 내려올 때 비로소 아는것이라는 것을... i = !
.
2012. 06.20
<소나무>
나는 너에게 어떻다고 하고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너는 위대한 것이다.
2012. 06.29
<~에게>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야.
엄청난 힘 앞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피할 수 있는 다리만 있었더라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나에겐 그런 강한 힘과 다리는 없었어.
그런데 이젠 어쩔 수 없잖아.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내가 바라는 건 땅이 촉촉해져 내가 뿌릴 내릴 수 있도록 해주면 고맙겠어.
나는 믿어.
네가 나에게 그런 비를 내려 주리라는 것을.
내가 있어야 너도 있을 테니까.
-나의 길잡이 영혼에-
2012. 08.14
<아빠오는 날>
8월 3일~ 8월 14일까지의 여름휴가
내일이면 아이들과 떨어져야 한다.
열흘 남짓 아이들과 웃고, 싸우면서도 너무 행복했다.
다행히 녀석들이 너무 의젓하고 내일의 헤어짐에 이제는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승현이는 양평에, 준경이는 고모 집으로….
두 오누이는 언제나 아빠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보이지 않는 경쟁을 했다.
때론 샘을 내고, 때론 누나를, 동생을 미워하고 시기하곤 했지만 서로 둘도 없는
친구이고 오누이였다.
떨어져 있으면 서로 보고 싶어 하고, 붙어있으면 잘 놀다가도 싸우고.
어른들은 그러면서 크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싸우는 아이들을 보면서 화는 내지만 그건 행복을 시기하는 불행의 장난이라 생각해 버린다.
2012. 08.25
<14년 전 수첩-그땐 그랬다>
오랜만에 아주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책장을 정리했다.
지금은 기억 속에 사라졌던 14년 전 5년간 항상 지니고 다녔던고 다이어리를 찾았다.
그곳엔 젊은 시절의 꿈과 고뇌, 풋풋함이 가득했다.
엄청난 양의 사진 조명 설계도, 현상 데이터, 각종 필름 농도 수치, 스케치했던 삽화,
알 수 없는 메모, 지인들 연락처와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미친 듯 사진 공부했던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수첩 깊은 곳에서 찾은 사진 3장.
한 장은 젊은 시절 증명사진
한 장은 엄마 뱃속에 있는 우리 딸 태아 사진
다른 한 장은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누나 소풍 때 같이 찍은 사진
그리고 순간 밀려오는 세월의 서운함과 무심함, 때론 감사한 감정이 뒤섞인다.
내 어린 시절 모습이 아들 준경이랑 똑같이 생겼다.
벌써 나도 제법 많이 살아온 인생이다.
"사진은 과학이 낳아 예술 앞에 던져 버린 사생아다"라고 했다.
사진이 그림보다 위대한 단 한 가지 있다.
"사진은 기억을 지배한다."라는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이다.
2012. 10.26
<어느 괄호의 사랑 이야기>
내 앞 자판엔 괄호가 살고 있었다.
둘은 언제나 다른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여느 날과 다름없었던 어떤 날이었다.
{ } = 살아가면서 둘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 { = 어느 날 문득 뒤를 보았을 때 하나는 다른 하나를 발견하였다.
}* { = 하나는 다른 하나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 } = 하나는 사랑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 } = 정말 열심히 사랑을 고백했다.
}<~ *{ = 그러던 어느 날 다른 하나도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 = 둘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 = 사랑을 시작했다.
***}{*** = 불꽃 튀는 사랑을 시작됐다.
******}{***** = 점점 더 뜨거운 불꽃 튀는 사랑을 했다.
*} {* = 하지만 시간은 그들의 사랑을 식게 되었다.
}<~ ~>{ = = 어느 날 서로에게 심한 상처를 입게 했다.
{ } = 그리고 서로는 서로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 } = 점점 더 외면했다.
{ } = 몸과 마음은 더 멀어졌다.
{ [ ] } = 서로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 [ = 그리고 그들은 벽만 남긴 채 서로를 떠나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느 날 그들이 살던 104 키의 자판은 고장이 났고, 그들은 이제 책상을 떠나야 했다.
하나와 다른 하나는 서로에게 미안함을 전하기 위해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 *( = 하지만 서로는 많이 변해 있었다.
) ( =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도 입은 사라져 버려 말할 수 없었다.
사랑했던 추억 속 하나를 보고 싶어도 눈은 사라져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서로를 원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 ? ( = 그들은 생각했다.
) ! ( = 그들은 느꼈다.
)( = 그리고 그들은 오래 같이 있을 수 있는 한 가지를 선택했다.
바로 그것….
O = 이제 그들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고장 난 자판을 보며 문득 생각남을 글로 옮김-
2012.10.22 23:25
2012. 12.27
일산에 프린트물을 전해주러 가던 중 선루프를 열었지.
그런데 다시 닫히지 않는 거야.
어쩌다 사용했더니 고장 난 것 같아.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결국 포기했지.
이 추운 날 어쩔 수 없이 찬바람을 맞으며 다녀왔지.
다시 서울에 도착해 AS 센터에서 수리했지.
잘 되더군.
오늘은 아내가 떠난 지 2년 된 날이지.
몇 주 전 성당에 위령미사를 신청했지.
지금은 미사 전이고 주차장에서 그날의 이별을 기억하고 있지.
참! 많이 아팠지.
아내는 내가 보고 싶었던 것 같아.
그래서 하늘에서 선루프를 열어 놓게 한 거고.
그럴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짜맞추기 논리로 수리된
선루프를 열어 놓고 다녔지.
가끔은 하늘을 보면서.
그리고 7시 미사를 볼 때였지.
아주 신기한 일이 일어났지.
미사 참배하려고 성당 의자에 앉았는데 내 옆자리에 아주 낯익은 가방이 있는 거야.
아내가 들고 다니던 진한 하늘색 Kipling 천 가방이 있는 거야.
내 옆자리에 앉으신 어떤 아주머니 가방이었지.
순간 멍했지.
뭐라고 할 까?
글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기분.
그런데 10여 분 지나더니 더 편한 앞자리로 가더군.
이게 영혼의 어떤 메시지인지 모르겠네?
이런 사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사 내내 생각했지.
그렇게 오늘은 아주 신비로운 날이었지.
<나의 아이폰 노트-2012년 1월>
12-01-06 (금) 16:28
소셜 미디어 = 소통이다?
소셜은 배설이다.
12-01-07 (토) 11:50
나에게 사진이란?
"사진은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했지만, 가난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12-01-13 (금) 01:02
중용
치우침이 없는 것이지만 죽도 아니고 밥도아닌 것과는는 다른 것이다.
12-01-15 (일) 13:32
"그대 지금 잠에서 깨더라도
꿈이 이루어지기를…."
12-01-16 (월) 11:28
왜? 버스 밖 풍경은 이렇게 아름다울까?
12-01-17 (화) 01:03
예뻤다.
너무예뻣다.
심장이멎는 듯했다다. 아니, 심장은은 멎었었다.
정신은 혼미했고, 앞은 캄캄했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은 멎은 상태였고,
영혼은 이미사로잡혔었기기 때문이다.
12-01-24 (화) 17:22
보이는 것만믿지 말고, 보이지지 않는 것도 믿으시오.
믿으면 보입니다.
그리고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바람은 내귀밑머리를를 날리고 있었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2년 2월>
12-02-04 (토) 00:44
당신들이 지구의 주인이라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 당신들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
12-02-07 (화) 23:16
우울증은 진화적 적응이다.
12-02-11 (토) 22:01
인간은 발명한 게 없다.
신의 창조물들을 발견하여 조합했을 뿐이다.
12-02-13 (월) 00:23
어떤 프레임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12-02-21 (화) 11:47
사랑?
서로에게 길들이는 것이 행복이다.
12-02-21 (화) 14:01
진정한 멋은 군더더기가 없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2년 3월>
12-03-08 (목) 11:37
비가 온다.
비가 온다.
비가 온다.
그렇게 비만 온다.
비가 왔다.
비가 왔다.
비가 왔다.
그렇게 비만 왔다.
그 자리엔 그렇게 비만 있었다.
12-03-16 (금) 01:01
사진은 내게 밥그릇을 채워 주기도 했지만, 빈 밥그릇만 덩그러니 남겨준 적이 더 많았다.
그래도 내 영혼 언제나 배불렀던 것 같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2년 4월>
아무것도 없음
<나의 아이폰 노트-2012년 5월>
12-05-02 (수) 10:20
꽃이 아름다운 것은 당신 안에 꽃이 있기 때문이다.
12-05-02 (수) 10:26
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은 겨울에 자신의 속내를 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2년 6월>
12-06-22 (금) 20:23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하는 것이다.
12-06-29 (금) 01:59
사진을 좋아한다기보다 사진을 쓰기에 좋아하는 것이었고,
음악을 좋아한다기보다 음악하기에 좋아하는 것이었다.
내 삶을 좋아한다기보다 삶을 살고 있기에 좋아해야 하는 거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2년 7월>
12-07-15 (일) 02:14
사진은 세상을 조각으로 담는다.
12-07-18 (수) 14:15
누구는 나를 천재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천재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는 집요했고, 몰입했을 뿐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내 일을 너무 사랑했고 즐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한다.
12-07-18 (수) 14:15
삶이 과연 주관식인가?
12-07-19 (목) 14:23
생각하라!
생각하라!
또 생각하라!
그리고 또다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지금보다 더 짧은 시간에 원하는 순간을 담을 것이다.
2012. 07. 28 PM 08:37
사랑을 쟁취하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겠지만,
사랑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존재감만 있으면 될 뿐이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2년 8월>
12-08-16 (목) 02:28미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외모는 중요합니다.
12-08-27 (월) 15:51
장님의 나라에서는 외눈박이가 왕이다.
-영화 마이너 리퍼트 대사-
<나의 아이폰 노트-2012년 9월>
12-09-02 (일) 02:58
언제 쉬어요? 월요일이요.
언제 자요? 10시쯤이요.
언제 먹어요? 배고플 때요.
당신이 쉬고 있을 때 저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당신이 자고 있을 때 저는 사진 공부를 했고,
그러나 당신이 배고플 때 저도 배를 채웠습니다.
12-09-19 (수) 00:10
일상에서 사진을 찍어 남기는 이유는?
존재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2년 10월>
12-10-06 (토) 10:39
같음을 숭상하되 다름을 추구하라.
상동구이(尙同求異)
12-10-06 (토) 10:39
나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2년 11월>
12-11-16 (금) 01:12
꿈은 추억하라고 꾸는 것이 아니라
꿈은 이룩하라고 꾸는 것이다
-어디선가 들은 말-
<나의 아이폰 노트-2012년 12월>
12-12-04 (화) 13:18
자아의식이 있어야 자화상을 담는다.
12-12-04 (화) 13:22
누구나 실수한다.
아마추어는 다른 탓을 하고,
프로는 무한한 책임을 진다.
그리고 프로는 자유를 얻기 위해 자득을 한다.
-드라마 대사-
12-12-14 (금) 02:25
공부는 키와 같은 성장이요.
도는 무게와 같은 빠짐이다.
12-12-23 (일) 23:52
공부하는 목적은 지금보다 더 깊은 학문에 질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12-12-31 (월) 00:31
돌이켜 보니 나이가 최고의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