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1.13
기울어진 사랑은 힘든것이다.
2014. 01.21
<호선>
이 얼마나 절대 고독의 평온한 어긋남 없는 순수한 무결점의 안정된 직선이란 말인가!
지금 그대 앞에 펼쳐진 그 일직선이 보이는가?
어떤가?
그 선이 너무 완벽하여 날카롭게까지 보이지 않는가?
심지어 아름답게까지 보이지 않는가?
그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저 직선의 진실도 보고 싶은가?
그것을 원한다면 알려주지.
좀 더 멀리, 아주 더 멀리 떨어져 뒷걸음쳐 지구 밖에서 그 수평선을 보게나.
그땐 그것이 '직선'이 아니라 '호선' 이런 걸 알게 될 것이네.
어찌하겠는가?
그대에게 행복함을 안겨다 주고 있는 꿈이 깨져도 굳이 대가를 치르며, 보겠는가?
-동해에서-
2014. 04.19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장비를 살 것인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무엇을 들려 줄 것인가? 를 더 고민해야 한다.
-2014 국제 영상 기자재 전시장에서-
2014. 04.19
<아버지>
2014년 04월 29일(음04.01) 21시 50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셨다.
1931년 12월 11일
1살
아버지가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서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1938년 8살
일제 식민지 시대라 일본 선생이 가르치는 광탄 공립 보통학교 덕수 간이 학교에 다니셨다.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춘천으로 유학을 가셨다가, 다시 서울로 유학을, 학교에 다니셨다.
1945년 15살
해방을 맞이했다.
서울에서 전기전기를 가르치는 현재 성동공고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계셨다.
1950년 20살
한국 전쟁이 일어났다.
군대에 입대했고, 공부를 한 덕분에 부산에서 행정으로 근무하고, 전쟁 후 제대하셨을 것이다.
학업을 하던 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왔다가
많이 고민하셨을 것이다.
결국 고향에 남기로 하고 학업은 포기하셨다.
부잣집에 태어났으니 농사라고 지어 본 적이 없었고, 처음 농사일로 엄청나게 고생하셨을 것이다.
1957년 27살
결혼하셨다.
다음 해에 첫딸을 낳았다.
나에겐 큰 누나가 된다.
그리고 두 아들을 낳았다.
1961년 31살
5·16쿠데타가 일어났다.
1963년 33살
아내를 잃었다.
많이 편찮으셨다고 한다.
그 뒤 할머니와 3명의 아이를 데리고 살았다.
1966년 약 36살
재혼하셨다.
처음 딸을 낳았고, 두 번째도 딸을 낳았다.
1971년 41살
그가 태어난 지 14,565일 되던 날 나를 만났다.
나는 사내아이였다.
그렇게 나는 아들로, 그는 아버지로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1972년 42살
그해 여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1973년 43살
7살 딸이 하늘로 올라갔다.
1982년 52살
첫 딸이 결혼했다.
1991년 61살
회갑 잔치를 열었다.
1993년 63살
둘째 딸이 결혼했다.
2004년 74살
막내 아들이 결혼했다.
2007 77살
국가 유공자가 되셨다.
2010년 80살
막내 며느리가 하늘로 올라갔다.
33살에 당신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막내아들이 겪는 것을 봐야 했다.
그리고
2014년 84살
그가 태어난 지 30,091일 되던 날 떠났다.
원래 있던 자리로 그는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아버지!
그는 언제나 말씀이 많지 않으셨고 글 읽기를 즐겨 하셨다.
그 시대 그렇게 공부하고 똑똑하셨던 그가 학업을 포기하고 낙향하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셨을 것이다.
아내를 잃었을 때 그가 느껴야 했던 상실감과 두려움, 죄책감은 큰 시련을 안겨다 주었을 것이다.
많은 재주를 아쉽게도 펼치지 못해 그는 아쉬웠을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을 아쉬워하며 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검소하셨고 지나칠 정도로 청렴했다.
그의 유품은 비싼 물건이 없다.
언제인지 기억되지 않지만 내가 선물한 만년필은 상표도 뜯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좋은 만년필은 아니지만 사용하기 과정을 보고 있는 것이 좋으셨나 보다.
돌아가시고 난 후
내 몸에서 어떤 혼불이 빠져 버린 듯 기운도 없고, 너무 허망한 기분으로 나날을 보냈다.
웃음도 잃어버렸다.
어차피 누구나 겪어야 할 이별이지만 아쉬움과 허망함은 좀체 가시지 않는다.
바쁜 일정만 끝나면 작년에 하지 못했던 아버지와 내 아들과 1박 2일 여행을 가려 했는데 하지 못함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삶이란 참 허망하고 부질없음을 배웠다.
살면서 많은 것을 소유할 필요도 없음을 배웠다.
앞으로 남은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웠다.
아버지가 떠나시니, 이제 내가 진정한 아버지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디 당신이 돌아간 새로운 세상에 당신이 원하는 풍요로움.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위대하고 당신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2014. 04.19
<이별 후>
나는 그랬다.
아내에게 못 해준 것만 생각이 났다.
지금 엄마도 그럴 것이다.
남편에게 못 해준 것만 생각이 날 것이다.
-아버지 떠나신 지 6일째 되던 날-
2014. 04.19
<아버지>
아버지!
갈수록 살아가는 것이 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
당신이 존재했을 때 저는 자신감이 넘칠 만큼 삶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막연하고 두렵습니다.
점점 무거워지는 책임감도 부담스럽습니다.
아직 철이 없는 것인지 여전히 어린 애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해집니다.
때론 억울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아내를 놓았다고 했을 때, 당신의 운명이 무심하게도 떠났습니다.
이제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했을 때 또 다른 생채기가 생겼습니다.
따지고 보면 억울할 것도 없는 것을 겪어야 할 운명이지만 괜스레 투정 부리듯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점점 커가는 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하고 두렵습니다.
막연한 사진 생활도 두렵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해서 살 자신도 없고 두렵습니다.
요즘은 모든 게 두렵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가슴이 먹먹하고 공허합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정신이 혼미합니다.
온몸은 힘이 없고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느낍니다.
삶이 이렇게 허무한 것인 줄 알았다면, 인간으로 환생하지 말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당신의 삶처럼 낙향해 살아갈 자신도 없습니다.
모두 끊어 버리고 어디 깊은 산속이나 외국에 가서 숨어 살고 싶을 만큼 두렵습니다.
그저 요즘은 하루하루가 특별한 감사함도 의미도 없는 듯 느껴집니다.
처해진 모든 책임이 부담되고 힘듭니다.
만사가 귀찮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우울감과 허무감은 숨기기 어렵습니다.
다시 마음을 부여잡으려다 다시 놓고 마는 반복된 일상입니다.
아버지!
마음이 제자리로 잘 잡히지 않아요.
2014. 12.02
딸아이 십계명.
마지막 한 줄.
'나에겐 내가 어떤 존재?'
녀석이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가씨가 되었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4년 1월>
2014.01.04 토 13:18
나에게 사치였다.
기적 같은 것은 내겐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2014년이 되었다-
2013.01.04 토 21:57
삶의 슬픔이 삶의 기쁨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한다.
-술을 먹었다-
2014. 01.05 일 종일
차라리 다행이다.
내가 아픈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참 지독하게 아프다-
2014. 01.06 월 18:14
삶이 의미가 건조해져 살고 싶지 않을 때,
메마른 삶의 갈라짐을 촉촉이 적셔주기 위한 신의 처방은 '눈물'이다.
-잠기다-
2014.01.11 월 00:32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되돌려 논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일 때가 있다.
'마음'이라는 녀석은 그렇다.
내겐 그렇다.
-하늘에 별을 보다-
2014.01.15 수 22:14
글쎄?
2014.01.18 토 새벽 1
코엑스에서 신사동 집까지 딱 한 시간 걸렸다.
음악을 듣던 스마트폰 배터리는 3%가 소진되었다.
-새벽에 집까지 걸어왔다-
2014.01.18 토 새벽 2
어떻게 듣든, 어떻게 생각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에겐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난 부끄럽지 않다.
-그날 나는 그랬다-
2014.01.19 일 09:17
내가 무엇을 할 때 몰입해야 하는 이유는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저편 깊숙한 곳이 웅크리고 자리 잡은 잠재력이란 녀석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행위다.
2014.01.19 일 20:18
오늘을 즐길 수 있는 날은 오늘뿐이다.
-내일 여행을 떠난다-
2014.01.20 월 01:05
내 삶의 사각지대를 알기 위해 바다로 간다.
눈 내린 도로를 가르며 One of us와 Wild horses 듣는다.
-바다에 가기 전에-
2014.01.20 월 01:33
때로는 책 속에 길이 있다.
그러나 그 속에 산재해 있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내겐 책이 아니라 현명한 길잡이가 필요하다.
다 읽고 더 이상 읽지 않을 책을 책장에 채우는 짓은 공간만 차지하고,
공허한 마음에 대한 어리광에 응석받이로 만들게 할 뿐 쓸모가 없다.
역시 다 읽은 책은 냄비 받침대로 써야 한다.
그것이 개념(槪念)이다.
-책을 읽다가 던져 버렸다-
2014.12.21 월 17시경
이 얼마나 절대 고독의 평온한 어긋남 없는 순수한 무결점의 안정된 직선이란 말인가!
지금 그대 앞에 펼쳐진 그 일직선이 보이는가?
어떤가?
그 선이 너무 완벽하여 다가가면 베일 듯한 날카로움이 아름답게까지 보이지 않는가?
만약, 그대 앞에 펼쳐진 저 일직선의 진실을 보고 싶은가?
그것을 원한다면 열라겠네.
뒷걸음치며 좀 더 멀리,
아주 더 멀리 떨어져 지구 밖에서 그 수평선을 보게나.
그땐 그것이 '직선'이 아니라 '호선' 이런 걸 알게 될 것이네.
어찌하겠는가?
굳이 대가를 치르며 그대에게 행복함을 안겨다 주고 있는 거짓된 진실이 무너져도 보겠는가?
-동해에서-
2014.01.26 일 21:29
오늘 수업은 사진 리터칭과 질감 수업.
수업을 마치고 한 잔 기울이며 조 선생님께서
"어린 시절 손수레에서 가마니 덮고 산 적이 있다."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시면서 눈물을 글썽 이셨다.
이 자리까지 올 때까지 많은 희생과 고난,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았다. 말씀하신다.
그렇다.
어느 분야든 어느 정상의 위치까지 가려면 모든 것을 누릴 순 없다.
많은 것을 버리며 많은 것에 깊은 생채기가 남기 마련이다.
그 안타까운 위안의 선물이 '성공'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겨울을 이겼기에 그토록 눈부시게 아름답고 향이 진한 것이다.
난 무엇을 더 버릴 것이 남아 있는지 내 삶을 검열해 봐야겠다.
-CEO님들과 수업 마치고 한잔하면서-
2014.01.28 화 22:00
사진을 프린트한다는 것은?
오디오로 듣던 음악을 라이브로 듣는 진한 증폭된 감동이다.
-피아노 밖 쌤과 사케를 마시던 중-
2014.01.29 수 20:28
이틀 후 한 살 더 먹는다.
기쁘다.
나이 먹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는 늙는 게 아니라 익어가기 때문이다.
-달력을 보던 중-
<나의 아이폰 노트-2014년 2월>
2014. 02.01 토 01:00
나비에게 꽃은 향기가 있을 때까지만 꽃이다.
-Let it go-
2014. 02.01 일 11:16
오늘의 행복은 오늘 찾고, 내일의 행복은 내일 찾자.
어제의 행복은 삶의 체취로 남겨라.
-아이들과 놀다가-
2014. 02.07 금 07:19
아름다운 기억을 추억으로만 간직하기엔 너무 아쉬우므로
그 기억을 울타리에 가둬 두기 위해 물질의 매개체를 각자의 방식으로 선택한다.
-인연이란 것은?-
2014.02.09 일 01:42
이제 아내가 사뭇 치게 그립지 않다.
그것은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가끔, 뜨문뜨문, 어쩌다 보고 싶은 정도다.
-잠자리에 들기 전-
2014.02.09 일 01:45
나도 언젠가 죽는다.
아마 그때가 되면 그것이 그렇게 슬프거나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그곳에서 나를 반겨주고 안아 줄 이가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2014.02.09 일 01:50
인연이란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거기엔 '정'이란 것이 있다.
정은 붙이는 것보다 떼는 것이 어렵다.
2014.02.11 화 21:35
.(마침표)는 새로운 시작이다.
마침표가 모이면 끝난 것이 아니다.
(...)
-마지막 전시회 날 학생들을 보냈다-
2014.02.15 토 09:07
발견과 발명
발견이 먼저 시작돼야 발명을 할 수 있다.
-아침 기상 후 초콜릿을 입이 넣고-
2014. 02.18 화 11:44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그런데 언제나 주인은 상처받는다.
그것이 웃기지만 웃지 못할 진실이다.
2014. 02.18 화 11:44
선생은 학생에게 진실과 진실에 대한 접근 방법을 가르쳐 줄 의무와 사명이 있다.
나는 그것을 가르쳤을 뿐이다.
나는 내게 당당하고 자랑스럽다.
사진의 진정성으로 진실 가르치던 우리를 진정성이 없는 기득권은 언제나 두려워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 뒤 벌어진 현재 상황들이 알려졌을 때 허탈해할 제자들이 걱정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2014. 02.21 금 08:50
마음이 흔들릴 때 잡는 방법은 무한한 자신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튼튼히 동여매야 한다.
-믿음이란 것-
<나의 아이폰 노트-2014년 3월>
2014.03.03 월 09:19
사랑이란 것은 새로운 영혼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일정한 영적 공간을 할애한다.
그때부터 영혼은 벅참이 시작되고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영혼이 들어앉고 자리 잡아 자리매김할 때 비로소 안정기에 놓이게 된다.
안정기는 평온과 충만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 자리는 원래 빈 공간이었기에 언제나 비워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2014.03.23 일 16:35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다.
2014.03.28 금 오후
그동안 많은 것을 잃고 산 듯하다.
2014.03.29. 토 10:50
삶은 읊조리듯 살아야 평온한 것이다.
3월!
하루가 24시간이란 것이 아쉬울 만큼 그렇게 바쁘게 빠듯하게 한 달이 지나갔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4년 4월>
2014년 4월 3일 목 09:40
풍경을 찍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움에 취해서는 안 되며,
사람을 찍더라도 눈앞에 놓여있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서도 안 된다.
그저 그 모든 것은 승화시켜야 한다.
-240번 버스를 타고 가던 중-
2014년 4월 19일 토 13:40
언제나 마음이 공항 상태라 무엇인가 하기 위해 미친듯 몰입하는 것 같다.
2014년 4월 24일 목 22:45
조각가의 손 중 예쁜 손이 없고,무용가의 발 중 예쁜 발이 없다.
그것이 아름다움의 진실이다.
2014년 4월 29일 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원래 있던 자리로….
<나의 아이폰 노트-2014년 5월>
05월 03일 토
가슴이 먹먹하다.
울음보가 터질 것 같다.
조금만 더 살아계셨더라면.
05월 06일 수
허하다.
05월 19일 월 11:00
생각났을 때 행동하지 않으면 훗날 미련이 남는다.
05월 29일 목
한 달이 되었다.
어디쯤 계시려나.
<나의 아이폰 노트-2014년 6월>
2014년 06월 07일 13:25
생각은 깊고 짧게.
행동은 빠르고 탄력 있게.
2014년 06월 11일 18:23
디지털 사진 시대도래 후 사진가들은 이야기한다.
'프로와 아마추어 차이가 없다'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차이는 분명 있다.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 당신이 프로를 가장한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철저히 가면 쓴 사진가를 생각하던 중-
2014년 6월 32일00:00
사유는 빈둥거림에서 나오는 듯하다.
-i Phone Note 정리하던 하던 중-
<나의 아이폰 노트-2014년 7월>
2014년 07월 08일 화 22:35
삶이 업그레이드만 할 순 없지.
때론 다운그레이드해야 편할 때가 있지.
***
지독할 만치 바빴다.
그래서 사유의 시간은 없었고, 그로 말미암아 생각하는 힘은 맥을 추지 못했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4년 8월>
2014년 8월 3일 일 00:28
'생각하는 힘'이란 녀석은 삶이 지나치게 물질로 풍요로우면 생기지 않는다.
'풍요'보다 때론 '부족'이 더 큰 '풍요'를 안겨다 줄 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
무릇,
부족함이란?
"다른 것을 채우기 위한 준비 단계일 뿐이다."
-7월 아이폰 노트를 생각하며-
2014년 8월 3일 일 00:45
히틀러가 사망한 지 69년이 됐다.
요즘처럼 히틀러에게 동정을 느끼긴 처음이다.
유대인의 하느님이 말씀 중 공개하지 않은 '피의 복수를 하라'는 언약과 율법이 있었나 보다.
아니면 랍비가 신의 언어를 통역 중 오류를 범해
'피의 복수'를 하라고 전했던가.
유대인은 '선민사상'이 아니라 '천민 사상'인 듯하다.
외신은 오늘까지 약1,700명이이 죽었다고 전한다.
-인터넷 기사를 보던 중-
2014년 08월 05일 화 22:46달빛이이 밝으면 별이 보이지 않고,
별 빛이 많이보이면 달빛이이 없는것이로구나.
반 달이 좋은 이유는?둘 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당에서 반 달을 보던 중-
2014년 08월 08일 금 10:04
세상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그 포화 상태에서 생존하기 위해 '단순함'을 지향하고 있다.
-우버 택시를 보고-
2014년 08월 03일 수 21시 경
모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가 없으면 '믿음'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2014년 08월 13일 수 22:24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난 언제나 그것이라 생각한다.
'희망'
희망의 본질적 물질은?
가-능-성
-신뢰가무너졌던던 날-
2014.08.18 화 14:00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사랑이었다는는 것을.
2014.08.22 금 00시 쯤
태초의 인간은 들판을 벌거벗고 다녔을 거다.
약속이나 한 듯 하늘에선빗방울이이 등줄기를 적셨다.
마치 흑백 영화를 본 듯했다.
마치 몽롱한 꿈을 꾼 듯했다.
달 빛없는 밤이 그렇게 아름답게보인 건건 처음이다.
-동강에서-
2014.08.23 토 21:33
내 이성은 너무 건조하고, 방어적 공격성으로돼 가고고 있음을알게 되었다다.
그건 강렬한 보호 본능에서말미암은은 것 같다.
-벌초 후 상경 중-
2014.08.24 금 2시경
세상의 모든 물질은 분자들이 모여 상호 에너지로 융합된 형태이다.
그 융합이 무너지면 다른 물질로 변화되거나 분해된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분해된 분자들은 다른 물질과 융합돼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거나, 기존 물질이 생성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는 수십억 년 전 공룡의 사체와 똥이 분해된 분자도 있고,
100억 광년을 날아온 유성의 분해된 분자도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빛도 머나먼 우주로 계속 흘러가고, 전파도 지구를 떠나 머나먼 우주로 흘러간다.
우리가 부르는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도 먼 공간으로 흘러간다.
어떤 물질이든 완전 소멸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디지털은 무엇인가?
전기의 강약을 부호화한 그것.
삭제 후 덮어쓰면 이전 내용은 온데간데없이 흔적이 사라진다.
과연 그 디지털 부호도 매우 작은 미립자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전기적 신호(에너지)로 막연한 공간으로 흩어지는 것인지?
대화 중 그가 이렇게 대답한다.
"생각이 사라지면 물질로 남지 않을 것 같은데요."
명쾌한 답변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생각도 뇌의 전기적 작동으로 생성되는 것인데,
그 전기적 신호를 부호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상상하는 모든 것을 실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잠자던 중 꿨던 악몽, 환상도 모두 물질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 전기적 신호를 부호화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그건 인간이 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라 생각된다.
-파주에서 정 진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
2014.08.31 일 13:59
철학의 이해가 없으면 과학을 알 수 없고, 과학의 이해가 없으면 철학을 알 수 없다.
-더럽게 맛없는 비빔밥을 점심으로 먹던 중-
<나의 아이폰 노트-2014년 9월>
2014년 9월 05일 08:30
거울은 인간에게 사치 허영을 안겨다 주었다.
거울을 멀리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바라본다는 것-
추석
차례를 지내는데 엄마가 먼저 간 며느리의 사진을 닦으며 한마디하셨다.
"이년아! 네가 내 제상을 차려야지. 내가 네 제상을 차리게 하냐. 이 못된 년아"
2014년 09월 10일
나는 니체의 말처럼 어떤 운명에도 영향받지 않는 '철인'이 되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하단 것을 알았다.
-통화 후-
2014년 09월 20일 토 01:49
그리운 것도 아픈 것이고, 미운 것도 아픈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아름답다고 덜 아픈 것은 아니다.
-한강을 뛰다가-
2014년 09월 27일 토 15:53
인정한다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4년 10월>
게으름으로 이번 달 노트는 없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4년 11월>
2014년 11월 03일 월 23:55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상태라면, 더 이상 물을 붓지 말아야 한다.
구멍이 막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2014년 11월 04일 화 13:20
사과나무에 꽃이 피었다고 모두 사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절반은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즉 매우 무책임한 말이 될 수 있다.
-해물 순두부찌개 정말 맛없다-
2014년 11월 22일 토 13:34
딸이 아가씨가 되었다.
사랑한다.
승현아!
그리고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
2014년 11월 30일 12:00
시제 (時祭)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아이를 낳아, 아버지가 되었고,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아이를 낳아, 아버지가 되었고,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아이를 낳아, 아버지가 되었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아이를 낳아, 아버지가 되었고,
그 아버지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아이를 낳아,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잔을 올린다.
오늘 5대조까지 모시는 시제를 지냈다. 사당당 상량식 때 대들보에 쓰신 아버지 서체가 보인다.
<나의 아이폰 노트-2014년 12월>
2014년 12월 09일 화 17:30
무언가 정체돼 있는 듯 정신과 가슴이 답답하다.
점점 굳어져 가는 내 일상에
좀 더 말랑말랑한 새로운 여유가 필요하다.
2014년 12월 15일 월 02:00
어쩔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미 겪어버린 경험이다.
다시 들춰내서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4년 12월 19일 금 18:10
먹고 살 걱정이 없다면.
잃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주어진 책임감이 없다면 모든이가 손가락질해도 부끄럽지 않다면.
오직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 악마였다면.
그랬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언제쯤 돼야!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수 있나,
언제쯤 내려놓고,
다 내려 놓고 욕심이란 녀석이 존재하지 않을까?
2014년 12월 21일 일 17:00
받아들여서 그렇게 힘든 것일까?
2014년 12월 26일 금
사람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2014년 12월 27일 토
아이들과 찾아가는 그곳을 가는 동안 모든 것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기에
이제 마음도 편하고, 발걸음도 가볍다.
2014년 12월 27일 토
지친다.
못난 걸까?
존재감이 상실된 기분투명 인간이명인간이 된 기분이다.
도대체 난 뭐냐?
2014년 12월 28일 일
오늘 닭백숙 먹으며 우린 너무 현명했다.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것이다.
그래! 내가 잘못한 거다.
2014년 12월 30일 화 새벽
그렇게 깊은 상처가 됐을생각을 못 했었다 못했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2014년 12월 30일 화 21:10
나에게 가상처 주는는 상처주는칼날 같은운 칼날같은 말은 언제후벼 파고 후벼파들고
아파서 고마움이 원망으로, 원망은 증오로 바뀌어 간다.
그래서 나도 아프고 그도 더 아프다.
이제 내가 그줘야 한다해 줘야한다.
2014년 12월 31일 수
지는 해를 바라아쉬움이은 아쉽움이 아니라 후련함이다.
이제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고생했다. 2014년